아이가 부모를 직접 면접보고 선택하는 설정이 신선했다. 서술방식, 플롯, 시점 등의 서사담론적 기법 보다는 인물과 공간, 사건 등의 서사적 기법이 돋보인 소설이다. 이중 국가의 아이들이란 인물 설정과 NC센터라는 공간 설정이 참 인상적이다.
태어나서 어쩔 수 없이 부모가 키울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아이들은 모두 국가의 아이들 즉 NC센터의 아이들이 된다. NC센터의 시스템은 탄생부터 취학전까지는 퍼스트센터, 초등 입학부터 12세까지는 세컨드센터, 13세에서 19세까지는 라스트센터에서 생활하는 것으로 규정되어 있다. 라스트센터에서는 아이들이 부모를 직접 선택해서 나갈 수 있는 권한을 갖는다.
세상에 태어난 아이들은 부모 개인이 양육하는 개인의 아이와 국가의 NC센터에서 단체로 키워지는 국가의 아이로 구분된다. 개인의 아이는 부모에게 선택되어 태어나면서 부모를 갖게 되지만 국가의 아이는 세 차례의 철저한 면접과 한 달간의 합숙생활을 통해 부모를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그리고 개인의 아이는 이름이 있고 자유롭지만 국가의 아이는 이니셜로 불리고 부모를 선택해서 나가면 자신이 원하는 새로운 이름을 가질 수 있다. NC센터 안에서는 학생을 관리하는 가디들도 성으로만 불릴 뿐 이름을 누설할 수 없는 것이 규칙이다. 이는 NC센터가 개인이 아닌 단체의 의미이기 때문에 개인이 불필요하기 때문일까?
양부모 즉, 프리 포스터들은 대부분 정부지원금을 받거나 노후보장을 위해 아이를 입양하려고 NC센터를 찾는다. 프리 포스터와 NC의 아이들은 먼저 서로 홀로그램 면접을 본 뒤 가디와 아이가 함께 직접 참여하여 1차 부모면접에 들어간다.
이러한 NC센터의 설정 자체는 성숙한 성인으로 넘어가기 전의 청소년을 상징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성인도 어린아이도 아닌 온전한 개인이 되기 위한 과정에 놓인 청소년들 말이다.
NC센터라는 공간에서 미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어찌 보면 현재와도 몹시 닮아있는 것을 느꼈다. NC센터에 갇혀 일거수일투족을 감시카메라에 낱낱이 감시당하고, 부모를 선택하기 전까지 세상 구경을 하지 못하는 NC센터의 아이들은 현재 고등학교까지 입시라는 감옥에 갇혀 생활하고 대학에 들어가서야 숨통이 트이고, 세상을 구경하게 되는 현대 청소년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적절한 비유도 인상적이다. 제목인 ‘페인트’가 부모면접이라는 은어로 설정한 것에서부터 제누301이 프리 포스터(양부모)들의 미소를 적당히 따뜻하고 지나치게 단 코코아에 비유한 것이며, 아키가 가디를 흐트러짐이 없고 주름하나 먼지하나 없는 새옷으로 비유한 것 등 적재적소에 들어가 있는 맛깔스런 비유들은 소설의 미를 살려내고 있는 것 같았다.
국가의 아이들에게 부모로 선택되기 위해 외모를 꾸미고 최대한 친절하게 대하여 입양할 아이에게 잘보이려고 노력하는 어른들의 모습은 청소년들에게 통쾌감을 주기 위한 장치인 것 같았다.
부모에게 선택되어지는 권리, 부모를 선택하는 권리, 부모를 갖지 않을 권리 중 청소년들은 어떤 권리를 선호할까?
부모와 가족이란 단어에 대하여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