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 ‘바다의 여왕’ 연수영 」1영류태왕의 대당 저자세 굴욕외교 (4)
● 연개소문 제거 음모를 꾸미는 친당파 대신들
그 해 겨울이 되자 요동벌에서는 인사(人事)에 변화가 일어났다. 요동성주(遼東城主)로 있던 욕살(褥薩) 해조신(解朝信)이 임기(任期)가 끝나 다른 곳으로 이동하게 되자 설부루성(屑夫婁城)의 처려근지(處閭近支)로 있던 소형(小兄) 고지순(高支純)이 대형(大兄)으로 승진되어 신임 요동성주로 부임하였다. 건안성주(建安城主) 창리벌(倉利閥)도 임기가 끝나자 모달(模達)로 진급하여 환도성(丸都城)의 방어군을 지휘하게 되었다. 이에 건안성의 처려근지에 복무하던 고원부(高元部)라는 삼십대 초반의 젊은 장수가 여러 욕살들의 추천을 받아 건안성의 새로운 성주로 임명되었다.
한편, 안시성주(安市城主)였던 제형(諸兄) 송효원(宋孝元)이 중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다가 세상을 떠나자 말객(末客) 온사문(溫沙文)이 경당(扃堂)에서 동문수학(同門修學)한 사이였던 요동성의 가라달(可邏達) 양만춘(楊萬春)을 천거하였다. 이에 연개소문은 양만춘을 신임 안시성주로 임명해 달라는 추천서를 써서 보냈고, 곧 양만춘을 안시성으로 임명한다는 칙명서(勅命書)를 받아낼 수 있었다. 이 때에 신임 안시성주가 된 양만춘과 새로운 건안성주로 부임하는 고원부는 훗날 제1차 여당전쟁(麗唐戰爭)에서 맹활약을 펼치게 된다.
그 이듬해인 641년 봄에 당나라에서 고구려의 태자가 입조한 것에 대한 답방이라는 명목으로 직방낭중(職方郎中) 진대덕(陳大德)이란 자를 사신으로 보냈다. 진대덕은 마치 고구려가 이미 당의 속국이라도 된 듯이 거들먹거리며 간이 배 밖으로 나온 듯한 태도로 고구려 백성들의 눈총을 받았다. 진대덕은 상국 칙사 행세를 하면서 보이는 오만방자한 행동거지와 더불어 요하를 건너 고구려의 영토로 넘어오기가 무섭게 지나는 고을마다 지형지세와 고구려군의 방어태세를 유심히 살피면서 노골적으로 공공연히 염탐행위를 자행하고 있었다.
본래 직방낭중이란 직책부터가 나라 안팎의 지도를 작성하는 자리였으므로, 제 나라는 물론이요 이웃 나라의 도로와 지형지세, 군비 상황의 파악은 필수적 임무였다. 한마디로 말해서 당나라는 대놓고 고구려에 간첩 두목을 사신으로 보낸 것이었으니 기개 있는 고구려 사내치고 분개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도 명목이 태자의 입조에 따른 답방인지라 영류태왕은 각 성의 욕살·처려근지·가라달들에게 당나라의 사신 진대덕을 깍듯이 대접하라고 특별히 지시했다. 요동의 천리장성 축성 공사가 다시 중지된 것은 물론이었다. 그렇게 해서 진대덕은 지나치는 성마다 환대를 받았는데 그의 안내는 기회주의자인 백암성주 손대음이 도맡다시피 했다. 한 성의 성주란 자가 잠재적 적국 사신의 수행원 노릇을 자청하고 나선 것이었다.
“내가 본래 산수의 경개를 너무 사랑하는 사람인지라 고구려의 산천경개도 모두 구경하고 싶소이다!”
진대덕은 겉으로는 그렇게 말하면서 접대를 맡은 고구려의 관리들에게 비단 같은 값비싼 뇌물을 주고 공공연히 요소요소를 정탐했다. 뿐만 아니라 전에 여수전쟁(麗隨戰爭) 때 포로로 잡혔다가 돌아가지 못한 채 고구려에 눌러앉아 살고 있는 자들을 만나면 눈물까지 흘려가며 이들의 향수를 자극했다.
연개소문은 고죽리(高竹離)와 술탈(述脫)이 전해주는 정보를 통해 진대덕의 일거수일투족을 낱낱이 파악하고 있었지만 당장 손을 쓸 형편이 아니었다. 울화가 치미는 대로 하자면 당장 쫓아가 진대덕의 목을 베어버리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럴 힘이 없었다.
그렇게 평양성 황궁에 들어간 진대덕은 영류태왕으로부터 성대한 환대를 받았다. 영류태왕은 황궁 내정에 울긋불긋 화려한 예복을 입은 의장대와 취타대를 요란하게 벌여놓고 진대덕을 맞이했다. 그리고 매일 밤 미인들을 동원한 초호화판 연회를 베풀어주었다.
성공적으로 임무를 완수한 진대덕은 장안성으로 귀환하여 태종에게 이렇게 보고했다.
“우리 대당제국이 고창국(高昌國)을 정복했다는 말을 듣자 고구려의 왕은 크게 놀라 황제 폐하에 대한 존경심을 표하고 우리 사신들에게 최고의 화려한 객관을 내어주며 폐하의 칙사 대접에 조금도 소흘함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태종은 크게 기뻐하며 자신의 신하들에게 말했다.
“고구려는 본래 우리 중국의 속현(屬縣)이었지 않은가? 짐이 수만 군사를 거느리고 요동을 정벌하면 고구려는 반드시 전 병력을 동원하여 요동을 구하려고 달려올 것인즉, 그때에 이르러 따로 수군을 보내어 동래(東萊)로부터 뱃길로 평양으로 향하게 하고, 수륙 군사가 합세하여 공격한다면 고구려를 정복하기가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산동 지방의 여러 고을이 아직도 지난번 전쟁에서 회복되지 못했기 때문에 짐은 좀 더 때를 기다려보려는 것이다.”
영류태왕이 아무리 당나라를 상국으로 떠받드는 태도를 취하고 있더라도 태종은 고구려를 침공하는 전쟁의 뜻을 거두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시사하는 발언이었다.
연개소문이 요동성에서 천리장성 축조 공사를 감독하고 있을 무렵, 그를 따라 요동벌로 온 누이동생 연수영은 개모성(蓋牟城) 외곽 청석관(靑石關)의 수비군을 지휘하는 장수로 복무하고 있었다. 청석관의 군사는 총 5백명이었다. 연수영은 오라버니 연개소문이 시집을 가서 가정을 이루고 살라는 권유를 여러 차례 해도 듣지 않고 군인으로 성공하겠다는 일념으로 연개소문이 마련한 여러 번의 혼사(婚事)를 모두 거부한 채 청석관에서 복무하고 있었다.
요령성(遼寧省) 개주시(開州市)의 청석관비(靑石關碑)에 따르면 연수영은 이곳에서 복무하면서 12명의 처녀를 모아 무술 수련을 시키고 자신의 호위무사로 삼았다고 전한다. 사람들은 이들을 12낭자군(十二娘子軍)이라고 불렀는데, 모두 남장(男裝)을 한 채 검은 옷을 즐겨 입었다고 한다. 12낭자군의 이름을 모두 열거한다면 해란봉(解蘭峰)·고광미(高光美)·양희봉(梁喜逢)·문정옥(文貞玉)·고정림(高貞林)·부경화(扶景華)·원신영(元信永)·연미여(淵美汝)·연미경(淵美景)·장혜경(張惠景)·전혜원(全惠寃)·금화(金花) 등이었다.
운명의 해인 서기 642년 9월이 되자 영류태왕은 요동벌의 연개소문을 평양으로 소환했다. 그동안 귀가 아프게 졸라대던 축성 공사에 투입할 교대 병력을 주겠으니 와서 인솔해가라는 것이었다.
그에 앞서 여름 7월에 연개소문은 평양성 본가에에서 아우 연정토가 보낸 밀서를 받았다. 동부가에 대한 친당파 조정 대신들의 압력이 갈수록 노골화되어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저택 입구를 내평(內評)의 군사들이 지키고 서서 출입하는 사람들을 엄중히 단속하고 있다고 했다. 가끔씩은 태왕의 명령에 따른 것인지 태위군(太尉軍)의 장수들이 동정을 살피고 가기도 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단순히 연개소문에 대한 반감의 표시가 아니었다. 영류태왕과 태자 환권 부자가 주도하는 친당 유화책에 조정 공론이 휘둘리고 있고, 이런 분위기에 따라 이제는 반당파 강골 무장 세력의 중심인물로 부각된 연개소문과 동부가에 대한 본격적인 탄압의 조짐이라고 볼 수 있었다.
위기를 감지한 연개소문은 연정토의 밀서를 받자 연수영을 급히 평양으로 보냈다. 연수영에게는 태위군 내사부에 속한 낭자군으로 있는 동갑내기 친구 해란봉을 통해 황궁의 정보를 비밀리에 탐지하라는 임무를 주었다.
연개소문의 가신과 측근들이 연개소문의 처소로 모였다. 추요선 사범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연개소문에게 말한다.
“주공, 아무래도 함정 같습니다. 가시지 않는 게 낫지 않을까요?”
“명목이 군사를 줄 터이니 인솔해가라는 태왕의 명령인데 어찌 거역하고 항거하겠소? 그래 봐야 성지(聖旨)를 거역하는 역적밖에 더 되겠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언제까지나 요동에 머물 수도 없고, 또 달아날 곳도 없는 형편이니, 어차피 부딪쳐볼 수밖에…!”
연개소문은 결심이 선 듯 확고한 목소리로 자신의 마음을 다잡는다. 그리고 가신과 측근들을 돌아보며 말허리를 잇는다.
“추요선 사범과 유대룡 집순, 두방루와 고죽리 네 사람은 내일 나와 함께 도성으로 귀환한다. 고죽리는 새벽에 먼저 출발해서 국내성으로 가서 고량(高量) 욕살에게 나의 편지를 전하고 박작성에서 나를 기다리도록 하라.”
“네, 분부 받들겠습니다!”
“술탈은 내가 가서 연락을 하면 즉시 군사들을 이끌고 따라오도록 하라.”
“잘 알겠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국내성주 고량에게 밀서를 썼다. 목숨을 걸고 도성으로 귀환하니 국내성과 환도산성의 군사를 거느리고 뒤를 받쳐달라는 내용이었다.
한편, 평양 장안성 황궁에서는 영류태왕과 친당파 대신들이 연개소문을 제거할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
“폐하, 연개소문을 이번 기회에 제거해야 합니다!”
동부가와 연개소문이라면 자다가도 쌍심지를 켜고 벌떡 일어설 만큼 증오하는 태대형(太大兄) 고웅백(高雄栢)이 앞장섰다.
“으음, 안타까운 일이야! 개소문이 불손하긴 해도 짐이 그 동안 죽은 제 아비를 봐서 친자식처럼 어여삐 여겼건만… 쯧쯧!”
“폐하, 외람되오나 국가 대계를 위해서는 사소한 인정을 버리셔야 합니다.”
“폐하, 통촉하소서!”
영류태왕을 둘러싸고 간신의 장막을 치고 있는 조의두대형(鳥衣頭大兄) 도병리(都丙利)와 의후사(意候奢) 고묘복(高苗福)이 거들고 나섰다.
“그렇지만 군사를 인수해가라고 불러들여서 제거해버린다면…… 머리가 단순한 장수들이 반발하지 않을까?”
“하오나 폐하! 군부에서도 전쟁보다는 화평을 원하는 장수들이 더 많사옵니다! 당나라와 같은 강대국과 전쟁을 하자는 자들은 정신병자에 불과한 자들이옵니다.”
“그러하옵니다! 역도들의 처리는 신들이 계책을 잘 세워 추진할 것이니 심려하지 마소서.”
“알겠소. 그럼 경들만 믿겠소.”
결국 이날 모의는 연개소문이 장안성에 귀환하여 군사들을 점고하고, 요동 임지로 다시 돌아가기 전에 태왕을 알현하러 황궁에 들어올 때 태위군 병사들을 대기시켰다가 잡아 죽이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하지만 비밀은 없는 법. 도성으로 귀환하자마자 연개소문의 귀에 이런 일급 기밀이 즉시 들어왔다. 이미 앞서 평양으로 돌아온 연수영에 의해 그런 기밀이 입수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 정보원은 황궁 안에서 연수영의 눈과 귀 노릇을 해주고 있는 내사부 낭자군 수령 해란봉이었다. 곧이어 연개소문과 친분이 있는 내사부 위장 해철주(解鐵周)를 통해서도 그런 정보가 확인되었다.
집으로 돌아온 연개소문은 그날 밤 동부가의 수뇌부를 한자리에 모아 비상대책회의를 열었다.
“……일이 여기까지 이르렀으니 이제 끝장을 봐야하지 않겠는가?”
“이렇게 된 이상 물러날 곳이 없습니다!”
“죽기를 각오하고 맞서 싸울 뿐입니다!”
“민심도 지금의 태왕에게서 등을 돌린 지 오래입니다.”
모두 분개하고 흥분했다. 손을 들어 그들을 제지한 연개소문이 입을 열었다.
“그렇다! 이대로 당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황궁으로 쳐들어가려니 우리 동부가의 가병 5백명으로는 군세가 부족하고…… 황성을 경비하는 태위군만 해도 1만명이 넘고, 내평 5부도 각 군주(軍主)가 거느린 병력이 3만명에 이르지 않는가? 이 4만명 가운에 우리에게 호응해줄 군사가 얼마나 되겠는가?”
그러자 집순(執盾) 유대룡(柳大龍)이 나섰다.
“우리 가병만으로는 안 되겠지요. 황성을 장악하려면 최소한 군사 2만명은 있어야겠습니다.”
두방루(豆方婁)가 말했다.
“요동으로 데려가려는 1만 병력이 있지 않습니까? 그들을 우리 편으로 만들면 되지 않겠소이까?”
고죽리(高竹離)가 말했다.
“요동의 군사를 불러들여야 할 줄 압니다!”
이번에는 아우 연정토가 나섰다.
“태왕이 준다는 그 병력 말입니다. 후방에서 편하게 있던 군사들이 갑자기 창과 칼을 거꾸로 돌려 태왕에게 들이대려고 할까요?”
추요선(秋要璇) 사범이 말했다.
“후방이라고 해서 우리 고구려 군사 가운데 편한 자가 어디 있겟습니까? 대의명분을 들어 설득하면 우리 편을 만들 수 있다고 봅니다.”
“그 수밖에 없겠습니다!”
의견들을 듣던 연개소문이 이윽고 지시를 내렸다.
“고죽리, 자네는 즉시 국내성으로 달려가 현재 사정을 고량 성주에게 전하라! 국사(國事)가 위태로우니 급히 군사 3만명을 거느리고 황성으로 진격하시라고. 고죽리는 임무가 막중하니 지금 곧 출발하라! 국내성을 향해 밤낮으로 달려가 구두(口頭)로 전하라! 만일을 위해 죽간(竹簡)을 보내지 않고 구두로 전하라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요동으로 가서 온사문(溫沙門)에게 군사들을 이끌고 오라고 일러라!”
“그럼 저는 즉시 출발하겠습니다!”
고죽리는 군례를 올리고 나서 그 길로 출발했다.
고죽리가 나간 다음 연개소문은 탁자 위에 평양성 지도를 펴놓았다.
“자, 모두 잘 보아라! 여기가 대성산이고 여기가 황성 안학궁이다. 여기는 패수다. 열병식은 이곳 황성 남쪽 패수 강변 연무장에서 열 것이다. 구체적인 거병 계획은 우리 군사들이 도성으로 들어오는 대로 다시 하달하겠다. 연정토는 추 사범과 유 집순 두 사람의 보조를 받아 가병들을 준비시키고 연수영은 술탈과 함께 황궁과 대신들의 동향을 주시하여 특이 상황이 있으면 즉시 보고하라. 나는 그 동안 고장(高臧) 고추가(古鄒加)를 설득하고, 또 해철주를 만나 태위군을 장악할 방도를 찾아보겠다.”
“네, 주공!”
“명을 받들겠습니다!”
▶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