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책 문예지 '소년'에 실린 동화
알 낳은 하양이 벼슬 단 노랑이
도영이는 하굣길에 학교 앞 문구점으로 향했다. 문구점 앞에 있는 게임을 하기 위해서였다. 주머니에는 오백 원이 있었다.
“히히, 오늘은 다섯 번 할 수 있겠다.”
아이들이 게임기에 당알당알 붙어있었다. 도영이는 게임을 하려다가 문구점 안에서 나는 반가운 소리를 듣고 문방구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삐악 삐악 …….
도영이가 문방구로 들어서자 병아리들이 반기기라도 하듯 더 큰 소리로 삐악거렸다. 마치 자기를 데려가 달라고 서로 사정하는 것 같았다. 도영이는 병아리들을 쳐다보며 한참을 생각했다.
‘너무 귀엽다. 하나 살까? 엄마한테 혼날지도 몰라. 작년에도 학교 앞에서 산 병아리가 죽어서 마음이 너무 아팠어. 어떡하지? 사구 싶다. 병아리야, 나하고 같이 가고 싶지?’
도영이는 작년에 죽은 병아리가 생각나서 망설여졌다.
작년 이맘때쯤이었다. 도영이는 학교 앞에서 병아리 두 마리를 사서 키웠다. 도영이가 친구들에게 자랑하자 승준이가 놀러왔었다.
“도영아, 병아리 어딨어?”
“이리와 봐.”
둘은 베란다로 나갔다.
“귀엽다. 나 한 번 만져봐도 돼?”
“자꾸 만지면 죽는댔어. 그냥 보기만 해.”
“그냥 한번만 들어볼게. 응?”
도영이는 마음이 내키지는 않았지만 승준이와의 의리 때문에 허락을 했다. 승준이는 신이 나서 얼른 병아리를 잡아들었다. 승준이가 병아리를 잡아든 순간부터 도영이는 마음이 불안했다.
“우리 병아리 햇볕 좀 쬐어 주자.”
승준이는 베란다 창문을 열며 말했다.
“안 돼. 떨어지면 어떻게 해.”
“조심할게.
승준이는 병아리를 자기 손바닥에 올려놓고 베란다 창문을 열어 팔을 쭉 뻗어 병아리에게 햇볕을 쬐어주었다. 도영이는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야! 병아리를 잡아야지. 떨어지면 어떡해. 이리 내 내가 잡고 있을게.”
“잠깐만. 조금만 내가 갖고 있자.”
“아니야, 내가 갖고 있을래. 너는 조심도 안하잖아. 이리 내”
삐악삐악! 푸드득 푸드득!
도영이와 승준이는 실랑이를 벌이다가 그만 병아리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병아리는 순식간에 땅에 떨어졌다.
으앙 으앙〜
“엄마, 승준이가 병아리 떨어뜨렸어.”
도영이가 엄마를 부르며 거실로 들어갔다.
“으앙〜 내가 안 그랬단 말이야.”
승준이도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엄마가 빨래를 하다 말고 욕실에서 나왔다.
“너희들 왜 그러니? 싸웠니?”
“글쎄 이 자식이 예삐를 떨어뜨렸어요.”
도영이는 엄마 손을 끌고 베란다로 나가 떨어져있는 병아리를 가리켰다.
“아이쿠 이를 어째! 얼른 가서 주워 와.”
도영이 엄마는 병아리가 시멘트 바닥에 떨어져있는 것을 보고 죽었을 거라 생각했다. 병아리는 눈을 허옇게 뜨고 있었다. 엄마는 하얀 천에 병아리를 예쁘게 싸서 도영이와 승준이를 데리고 매일 등산하는 산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산 중턱에 병아리를 묻어 주었다. 무덤 위에 도영이가 나무를 꽂아주었다. 승준이는 돌맹이 하나를 주워다가 무덤위에 올려주었다. 셋은 아무 말 없이 산을 내려왔다.
혼자 남게 된 씩씩이는 힘이 없어 보였다. 먹이도 안 먹고 시름시름 앓다가 일주일을 넘기지 못하고 죽었다. 엄마는 도영이와 함께 씩씩이를 예삐 옆에 묻어주며 말했다.
“얘들이 살 곳은 우리 집이 아니라 이런 들판이란다. 그리고 학교 앞에서 파는 병아리는 약해서 공기가 탁한 아파트에서는 더 견디지 못해. 이렇게 공기 맑은 곳에서 마음껏 뛰어놀며 자라야 하지.”
도영이는 그 이후로 병아리를 사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도영이는 쭈그리고 앉아 물끄러미 병아리들을 바라보았다. 작년에 죽은 예삐와 씩씩이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아저씨, 이 병아리 튼튼해요?”
“응〜 그럼. 튼튼하고말고.”
“작년에는 병아리가 금방 죽었는데.”
“이 아저씨는 튼튼한 병아리만 가져왔단다. 이거 봐라. 소리도 크잖니?”
아저씨는 도영이를 안심시키려고 애를 썼다.
“튼튼한 병아리로 한 마리만 골라 주세요.”
“병아리는 짝꿍이 있어야 튼튼하게 잘 자란단다. 그러니 두 마리 가져가거라.”
“돈이 오백 원 밖에 없는 걸요?”
“두 마리에 육백 원인데 그냥 오백 원에 가져가거라.”
“고맙습니다. 아저씨 튼튼한 것으로 주셔야 돼요.”
아저씨는 노란색과 하얀색을 검은 비닐봉지에 넣어주었다.
도영이는 한 번 잘 키워보려는 마음으로 병아리 두 마리를 가슴에 안고 집으로 뛰어왔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검은 비닐봉지에서 병아리를 거실 바닥에 얼른 꺼내 놓았다. 병아리에게 집을 만들어 주려고 상자를 찾았다. 커다란 라면 상자를 발견했다. 그 속에 포장지로 깔고 종이컵을 잘라 물통을 만들어 주었다. 추울까봐 화장지를 두 세 겹으로 붙여서 따뜻한 이불도 만들어 깔아주었다. 병아리를 넣고 먹이를 주었다.
삐악삐악!
병아리들은 행복한 듯 소리 내며 수다를 떨었다.
“병아리들아, 여기서 오래오래 잘 살아? 참 가만 있자. 음. 너는 색깔이 노랑색이니까 노랑이이고, 너는 조금 하얀색에 가까우니까 하양이라고 할까?”
병아리들은 이름이 마음에 들었다는 듯이 삐악거렸다.
도영이는 밤이 되었어도 방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상자 옆에서 하양이와 노랑이를 지키다가 잠이 들었다.
“도영아, 도영아”
“응. 누구니?”
“나야 나. 작년에 네가 문구점에서 샀던 예삐와 씩씩이”
“너희들 여기에 어떻게 왔니?”
“따뜻한 봄이라서 하늘나라에서 나들이 나왔지.”
“그래! 잘 왔다. 내가 너희들이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아니?”
“우리는 네가 문구점에 들어올 때 너를 단번에 알아보았는데.”
“그럼. 작년에 죽은 예삐와 씩씩이가 다시 태어난 거야?”
“응. 이번엔 우리 튼튼하게 키워줘야 해?”
“응. 이번엔 너희들이 닭이 될 때까지 잘 보살펴 줄게.”
도영이는 꿈을 꾸다가 노랑이와 하양이가 궁금해서 벌떡 일어났다. 상자 안을 들여다보니 하양이와 노랑이는 새근새근 자고 있었다. 엄마가 밥을 하려고 나왔다.
“아니! 너 거기서 잔거니?”
“엄마, 씩씩이와 예삐가 다시 돌아온 거래요.”
“얘가! 일어나자마자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꿈속에 씩씩이와 예삐가 나타나서 말해주었다니까요?”
“응 그렇구나! 도영이가 마음이 따뜻해서 다시 온 모양이네.”
도영이는 곤히 자고 있는 병아리를 살짝 건드려 보았다.
삐악삐악!
노랑이와 하양이는 깜짝 놀라며 일어나 병아리들이 먼저 아침인사를 했다.
“잘 잤니? 학교에 다녀올 동안 잘 놀아야 해?”
도영이는 병아리가 건강한 것을 보고 마음이 놓여 학교 갈 준비를 했다.
“엄마, 저 학교에서 돌아올 때까지 병아리 좀 보살펴 주세요.”
“그래. 병아리 걱정하지 말고 빨리 학교에 갈 준비 하렴. 늦겠다.”
도영이는 엄마에게 간절히 부탁을 하고 학교에 갔다.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었다. 엄마는 청소하다가 도영이가 만들어 놓은 병아리 집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원 녀석도. 커서 뭐가 되려는지 참.”
엄마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웃었다. 물통을 꺼내서 물을 가득 부어왔다. 먹이도 넉넉하게 넣어 주었다.
“많이 먹어라. 아줌마는 옷 바꿀 게 있어서 백화점에 다녀와야 되거든.”
병아리들은 알아들었다는 듯이 삐악거리며 풀썩풀썩 움직였다.
엄마는 외출을 하였고, 도영이가 학교에서 돌아왔다. 번호 키 뚜껑을 열고 번호를 눌러 문을 따고 들어와 먼저 병아리 상자로 달려갔다. 상자를 들여다보고 도영이는 그만 눈물이 왈칵 쏟아지고 말았다. 하양이가 옆으로 누워 숨만 헐떡이고 있던 것이었다. 다행이 노랑이는 털이 조금밖에 젖지 않아 걸어 다니고 있었다. 도영이는 노랑이와 하양이를 상자에서 꺼냈다.
“너희들이 장난쳐서 물이 엎질러졌구나.”
상자 안에 있는 것을 모두 꺼내어 뽀송뽀송한 것으로 다시 갈아 넣어 주었다. 노랑이는 물기만 닦아 다시 넣어 주었고 하양이는 물기가 마를 때까지 안고 있었다. 도영이는 학원에 가는 것도 잊고 하양이를 품고 다니며 등을 계속 쓰다듬어 주었다.
하양이는 해가 질 무렵부터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저녁에는 하양이 혼자 걸어 다니기도 했다. 도영이는 집에 돌아온 엄마를 보고 아는 체도 하지 않았다. 도영이는 엄마가 집에 없는 것도 잊고 있다가 엄마가 들어온 것을 보고 화가 났다.
“도영아, 엄마가 늦게 와서 화가 났구나. 학원은 잘 다녀왔니?”
“학원엘 어떻게 가요? 우리 하양이가 죽으면 어떡하라구.”
“너 이 녀석 학원에도 빠지고 왜 이렇게 퉁퉁거리니?”
“엄마가 하양이랑 노랑이도 돌보지 않고 나갔으니까 그렇죠.”
도영이는 이제 노랑이와 하양이를 맡기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도영이는 정성껏 병아리들을 돌봐주었다.
일주일이 지나니 노랑이와 하양이는 날개가 나오기 시작했다.
“엄마, 이거 봐요. 노랑이와 하양이가 날개 나왔어요. 노랑아, 하양아 축하해.”
“이젠 병아리들 걱정 안 해도 되겠구나.”
“엄마 일광욕도 시켜야겠어요. 밖에 데리고 나갔다가 와도 되죠?”
“그래. 그런데 병아리들이 크면 걱정이구나.”
“괜찮아요. 제가 잘 돌볼게요.”
엄마는 병아리가 커가는 것이 걱정이 되었다.
“병아리도 몸집이 크면 아파트가 답답해질 거야. 시골 할아버지께 키워달라고 하는게 어떻겠니?”
도영이는 고개를 저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보면 병아리들도 도영이를 더 반가워 할 걸? 병아리들도 시골에서 자라야 더 건강하게 자랄 수 있고.”
“엄마, 그러면 토요일마다 엄마가 할아버지 댁에 데리고 가요.”
“그럼, 엄마도 저 녀석들과 정이 들어서 보고 싶을 건데?”
노랑이와 하양이는 일요일에 할아버지 댁으로 이사를 갔다. 할아버지께서는 나무로 예쁜 닭 집을 만들어 놓고 기다리셨다.
“아이 예뻐라. 노랑아, 하양아 이 집이 너희가 살 집이래”
삐악삐악!
노랑이와 하양이는 마당과 나무 집을 마구 뛰어다니며 푸드득거렸다. 도영이도 노랑이와 하양이가 마구 뛰어 노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흐뭇했다.
“도영아, 할아버지가 큰 닭으로 키워서 알을 낳게 해주마.”
“정말요? 야! 신난다.”
도영이는 좋아서 펄쩍펄쩍 뛰었다.
“노랑아, 하양아, 할아버지 말씀 잘 듣고 튼튼하게 자라야 돼. 다음 주에 또 올게.”
푸드득거리며 신나게 뛰어노는 노랑이와 하양이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도영이는 주말마다 노랑이와 하양이를 보러 할아버지 댁에 갔다. 도영이가 갈 때마다 노랑이와 하양이는 점점 커서 닭이 되어 가고 있었다. 노랑이는 벌써 머리에 빨간 벼슬을 달고 있었다.
꼬끼오 꼬꼬댁!
하양이가 커다란 소리로 울었다.
“할아버지, 하양이가 왜 울어요?”
도영이가 할아버지 뒤를 쫄랑쫄랑 따라가며 물었다.
“알을 낳았나보구나.”
도영이와 할아버지가 하양이에게 가보니 바구니처럼 생긴 곳에 알 두 개가 포근하게 놓여있었다.
“아이 따뜻해라. 이걸 하양이가 낳았어요?”
“그래 요즘 매일 두 개씩 낳고 있단다.”
빨간 벼슬을 단 노랑이도 어느새 꼬꼬꼬 소리를 내며 도영이 옆에 와서 모이를 쪼고 있었다.
“할아버지 노랑이와 하양이를 잘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도영이는 튼튼하게 자란 노랑이와 하양이를 보니 할아버지와 노랑이 하양이 모두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